Life & Mind

이번 해는 처음이라 #2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지만 이 얘기만은 꼭 해주고 싶다는 언니들의 조언 몇가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느 식당이 맛있더라’ 하면 꼭 ‘아~ 거기? 네가 아직 OO식당을 못 가봐서 그래. OO식당이 더 맛있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 ‘이 연주 너무 훌륭하다’라고 쓰면 ‘님, OO 연주는 들어보고 말씀하시나요~’라고 댓글 다는 사람들. ‘와, 이 버터 최고네’ 하면 ‘버터의 최고봉은 XX버터죠’라고 멘션 날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레벨로 파악한다. 세상은 일직선이고, 경험은 순위로 정렬되며, ‘더 높은 레벨’을 내가 경험해봤음이 유일한 자랑이다. 대개 기준이 자기안에 있지 않고 가격이나 권위 있는 순위표에 크게 의존한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된 해악은 ‘감탄하던 상대의 기분을 잡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식당을 평가하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 집에 다시가느냐, 가지 않느냐다. ‘그 경험을 다시 한번 느껴볼 만한가?’라는 질문에 답이 ‘예스’라면 다시 간다. 날이 추운데 그 집의 따끈한 국물이 떠오른다면 다시 간다. 내겐 자주 가는 가게가 여럿 있는데, 나름대로 이유로 그곳들을 사랑한다. 그 사랑에는 순위표가 개입하지 않는다. 내 친구 하나는 훌륭한 요리사인데 그녀에겐 음식에 대해 뭘 물어보든 척척 대답이 나온다. 파인다이닝에서 접하는 희귀한 향신료나 소스에 대해서도 해박할 뿐 아니라 각 편의점 샌드위치의 종류와 강점에 대해서도 훤히 꿰고 있다. 상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상대의 무지를 비웃지도 않는다. 나는 이 친구의 태도가 참 존경스럽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요리를 전공했고 스페인에 머물며 음식을 탐구하더니 또 태국으로 떠나 요리 클래스를 듣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동네 돈가스집에서 나온 얼음 생맥주에 ‘최고!’라고 외치는 그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분명 맥주의 풍미를 잘 식별할 수 있고 온갖 정보와 트렌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텐데 말이다.

새로운 해를 맞았다. 사람들은 시간을 앞으로 나아가는 직선으로 상상하고, 새로운 한 해엔 레벨업을 하게 되기를 꿈꾼다. 그게 더 많은 지식이든 재산이든 직위든 체력이든 작년의 나보다 더 높은 레벨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레벨로 파악하기보다는 스펙트럼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한다.예년보다 더 높은 내가 아니라 더 넓은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 다양한 것을 보고, 그걸 바탕으로 더 많은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정교하게 완성되어 세상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것들도 경험해보고, 창의적 시도지만 아직 서툴러 망한 것들도 경험해보고 싶다. 비싸고 귀한 음식도 맛보고 싶고 싸구려 음식의 그 ‘싼맛’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 익숙해지고 노련해지기보다는 자주 실패하더라도 모험심을 잃지 않고 싶다. 이전 경험과 비교하는 순위표를 마음속에 갖지 않고, 새로운 경험에 매번 새롭게 감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의 인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꼭 나아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해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것도 있게 마련. 우리는 단지 변화할 뿐이다. 새로운 해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는 누구도 2018년을 미리 살아보지 못했다. 내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과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 유연하고 넓은 나로 변화하고 싶다. 그리고 더 넓어진 나야말로 결국엔 더 나아진 나일지도 모른다. 


<힘빼기의 기술> <15도-미묘한 차이> 저자 김하나 

CREDIT

  • 에디터고현경
  • 디자인정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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